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00번째 원숭이 신드롬'

외부스크랩

by techbard 2008. 4. 23. 11:07

본문

반응형
음... 공명과 개별 정신의 보편화 그리고 임계치라... 재밌군...

------------------------------------------------------------------------------------------------------

'100번째 원숭이 신드롬'

물고기가 여러 해류들을 따라 헤엄치듯이, 사람도 인류의 집단사고 양태인 지배적 사고방식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환상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 이 사고방식 위로 떠올라 그것의 파도 마루로 올라설 때다.  따라서 이 사고방식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 것의 존재와 성격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가 참된 시각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00번째 원숭이 신드롬'에 깔린 발상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이야기를 잠시 해 보도록 하자.

이 이야기의 배경은 라이징선랜드에 있는 한 군도(群島)이다. 이 군도에 사는 특정 종의 원숭이들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1950년에 이 원숭이에게 고구마를 소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 낯선 식물을 찬찬히 살펴보던 머리 좋은 원숭이 한 마리가  바다모래가 잔뜩 달라붙어 있는 게 실었던지 고구마를 바다로 가져가 모래를 씻어냈다.

이 새로운 음식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지켜본 또 다른 원숭이가 금방 그 행동을 모방했고, 얼마 가지 않아 그 원숭이 씨족 전체가 입안에서 모래가 버석거리는 불쾌감을 맛보지 않고도 고구마를 먹을 수 있는 요령을 터득했다.  다른 섬들에 있던 동료 연구자들도 이와 똑같은 과정이 원숭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작은 새 한 마리가 집 문 앞에 배달해 놓은 우윳병의 뚜껑을 여는 법을 찾아냈다.  병들은 새의 부리로 뚫을 수 있는 것이었기에 새는 우유 윗부분의 맛있는 크림 덩어리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3일에서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스콧트랜드까지 포함하여 영국 전역에 사는 이 종의 새들 전부가 우윳병을 여는 법을 알아낸 것이다.

두 경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깔려 있는 원리는 공명(共鳴)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보편정신, 하나의 나뿐이다.  개별 정신은 보편정신, 즉 신 혹은 나의 특정한 개별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의 경우에는 개개 동물을 집단정신 혹은 집단의식의 일부로 보기가 훨씬 쉽다.

한 무리의 새들이나 한 때의 물고기들이 온전히 한 덩어리라도 되는 듯 순식간에 전체가 방향을 바꾸는 모습을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영장류에 이르러서 정신은 이미 훨씬 더 개별화된 상태가 된다.  그럼에도 한 원숭이의 정신 양태 혹은 진동수가 이웃인 자기 혈족, 자기 가족 원숭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일단 가족 전체가 고구마를 씻어먹는 요령을 알고 나자 사고 진동수의 발산은 원숭이 가족의 숫자에 비례하여 증폭되고 늘어났다.

그러자 전체로서 그 원숭이의 진동체가 원숭이 가족과 똑같은 진동수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일이 금방 일어난 건 아니었다. 눈사태가 일어나려면 관성이 붙어야 하듯이 공명도 쌓일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원숭이종의 진동체가 진동수에 공명하도록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숭이의 수를 임계(臨界) 수치라고 한다. 그렇다면 “100번째 원숭이 신드롬”이라는 용어에서는 100이라는 숫자가 임계치를 나타내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100이라는 수는 단지 상징성만을 갖는다. 만일 어떤 생각의 근원이 그 생각을 충분히 강렬하게 발산한다면, 단일정신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사고방식을 가동시킬 수 있다.

이 에너지가 주요한 사고방식으로 발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또한 바로 그 집단이 발산하는 사고의 강도에 좌우될 것이다.  따라서, 실제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은 이 원리를 이해하는 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 원리는 인간 종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만일 특정한 사고 양태를 고수하는 개인들의 수가 임계 수치에 도달한다면, 이 사고 양태는 모두의 자산이 된다.  달리 말하면 한 집단의 사고 진동수가 인류를 에두르고 있는 공명체를 공명시킬 만큼 충분히 강해지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인플루엔자”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고 해보자. 그의 사고 진동은 비슷한 방식으로 그의 가족 진동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나면 그 가족은 이 진동을 친구들에게 옮기고, 아이들은 인플루엔자 진동을 학교로 가져 가게돼, 결국 오래지 않아 인플루엔자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임계치에 도달하게 된다.

그들의 사고 양태는 인플루엔자에 맞는 특정 진동수에 따라 진동한다. 인플루엔자에 대한 생각은 두려움에 근거한 진동이기에 낮은 진동수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 진동을 가장 잘 받아들일 사람들은 다음 두 집단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첫째로 이미 그 진동수나 그것과 가까운 진동수로 진동하고 있는 유사집단. 이 집단이 꼭 “인플루엔자”를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이 비슷한 진동수인 접촉성 같은 가치들에 붙들려 있는 건 확실하다. 이 집단은 자신의 진동 소리에 곧바로 공명하는 소리굽쇠에 비유될 수 있다.

두 번째 집단은 낮은 진동수를 나타내는 마음들을 나타낸다. 이 마음들은 스스로 명확한 사고형태를 발산하지는 않지만 외부의 자극에 대단히 민감하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느슨해지면 무심결에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고 만다.  느슨해진 정신의 진동수가 오래지 않아 자극을 가하는 쪽의 진동수와 같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집단이 첫 번째 집단에 보태지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플루엔자를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설사 재난이 일어난다 해도 어디 그것이 놀랄 일이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존재하고, 생각하는 대로 현실을 창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극하는 쪽의 진동이 리드미컬한 흐름으로 발산될 때 우리는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집단화된 사고 진동수의 진폭이 애초에 공명을 일으킨 쪽의 진폭에 비해서 몇 배로 증폭되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 행진하는 병정들의 모습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발걸음 리듬으로 다리가 무너질 것 같은 진동이 쌓여간다.  그 걸음 진동의 진폭은 계속 똑 같지만 공명하는 진동의 진폭이 다리를 무너뜨릴 높이로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공명하는 생각 진동의 진폭은 예컨대 대중히스터리로 표현되는 임계점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출처: http://cafe.naver.com/momzzangdie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068


------------------------------------------------------------------------------------------------------

사람들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무능력한 목표, 다시 말하면 그들을 분발하게 하지 못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앤서니 라빈스...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덧붙이자면 이 과정에는 믿지 못할 정도로 역동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자원을 개발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힘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더 강한 느낌을 가지게 되면 결국 더 많은 자원을 개발할 수 있게 되고 더욱더 강한 감정 상태에 들게 된다.

‘100번째 원숭이 신드롬’이라 불리는 아주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생물학자 라이얼 왓슨은 1979년에 발간된 저서 <생명 조류>란 책에서, 일본 근처 한 섬에 사는 원숭이 집단이 막 흙 속에서 캐내 모래가 묻어 있는 신선한 고구마를 새로운 먹이로 제공받고 난 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다른 먹이는 따로 조리가 필요 없기 때문에 원숭이들은 더러워 보이는 고구마를 먹는 걸 주저했다. 그런데 한 원숭이가 고구마를 흐르는 물에 씻어서 문제를 해결하고는 엄마와 친구 원숭이들에게 같은 방법을 쓰도록 가르쳤다. 그러자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약 백 마리에 이르는 일정한 숫자의 원숭이들이 그 지식을 습득하고 나니까 심지어 그들과 전혀 접촉이 없던 다른 섬에 살던 원숭이들도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원숭이들은 먼저 그것을 알아낸 원숭이 무리와는 전혀 접촉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행동은 퍼져나갔다.

이제 이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서로 전혀 연락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일치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 물리학자들이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는데, 동시에 다른 곳에서 세 명의 다른 물리학자들이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을까? 아무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지만 물리학자 데이비드 붐과 생물학자 루퍼트 쉘드레이크를 포함한 저명한 과학자들과 두뇌 과학자들은, 우리 모두를 끌어당기는 ‘집단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이라는 것이 있어서 믿음, 집중된 초점, 그리고 최적 상태의 신체를 통해 우리 자신의 내부를 정렬할 때 이 집단의식 상태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게 된다고 믿고 있다.

우리 의 몸, 두뇌, 감정 상태는 더 높은 차원의 존재와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소리굽쇠와 같다. 조율이 잘 될수록 우리는 내부와도 더 잘 일치될 수 있고 또 그럴수록 더욱더 풍부한 지식과 느낌에 깊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정보가 잠재의식에서 걸러져 우리에게 전달되듯 집단의식도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자원감이 있는 상태에 있을 때 밖으로부터 걸러져 우리에게 오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잠재의식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꾸준히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 잠재의식 차원에서 우리의 마음은 받아들인 정보를 왜곡, 삭제, 그리고 일반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전에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미리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멕스웰 몰츠는 그의 저서 <사이코 사이버네틱스>에서 이것을 ‘사이코 사이버네틱스(psycho-cybernetics)’라고 불렀다. 마음이 뚜렷이 정해진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는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지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의도하는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다시 초점을 맞추고 다시 지시하는 것을 계속하게 된다. 뚜렷하게 정해진 목표가 없으면 그 에너지가 분산되게 된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톱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가 왜 숲 속에 서 있는지 모르는 사람과 같다.

사람들이 각자의 자원을 완전하게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들 자신의 목표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1953년도 예일 대학 졸업생들에 대한 조사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졸업생들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와 그것을 달성할 계획이 작성되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들 중 단 3퍼센트만이 서면으로 작성된 목표가 있었다. 20년이 지난 1973년에 연구원들은 다시 1953년 졸업생 중 살아 있는 사람들을 조사했다. 그들은 서면으로 작성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던 3퍼센트의 사람들이 나머지 97퍼센트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분명히 이 조사는 사람들의 재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사원들은 졸업생들이 느꼈던 행복과 기쁨의 수준같이 측정이 힘들고 주관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서면으로 작성된 목표를 가지고 있던 3퍼센트의 사람들이 역시 더 우월하다는 것 또한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목표 설정의 힘’이다.

이 장에서 우리는 자신의 목표, 꿈, 소망을 명확하게 만드는 방법, 마음속에 자신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얻는 방법을 강하게 입력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예전에 퍼즐을 할 때 전체 그림을 보지 않고 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자신의 목표를 알지 못하고 인생을 짜맞추려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알게 되면 신경계로 받아들인 정보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 필요한지 명확한 그림을 뇌로 보내게 된다.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출처: http://cafe.naver.com/mindchanger.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7188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