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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 주말에 교보문고에 간 적이 있다. 나의 글쓰기 실력에 의문을 가지던 중 글쓰기와 관련한 책을 몇 권 구매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논증의 기술'이다. 얇은 두께에 한손에 들고 다니기 좋게 되어 있어서,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시간에 보려고 샀다. 아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스킬이라기 보다는 사고의 과정을 글쓰기라는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이 적합한 논리다. 글쓰기 자체는 손을 이용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자료를 참조해서 옮겨적고, 맞춤법에 신경 쓰며, 구둣점과 방점에 유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무명 소졸의 인터넷 댓글과 깊은 사색을 하게 하는 짧고 강력한 문장 하나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제목이 조금은 도발적이기는 하지만, 현장에서 책 내용을 꼼꼼이 살펴보고 구입한 것으로 구매실패 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테스팅과 관련이 너무나 많은 것으로 보이는 한 장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왜 필자가 소프트웨어 테스팅과 관련이 있다고 얘기하는지 필이 오는 분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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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의 기술 by 앤서니 웨스턴

pp. 191

Rule D2 용어가 반박되면 용어 정의를 다시 하라

어떤 경우에는 용어가 반박될 때도 있다. 용어 자체의 적절한 적용을 두고 사람들이 다투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용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논증이 더 필요하다.

어떤 용어가 논쟁거리가 되고 있을 때는 그 용어와 관련된 것들을 세 개의 집합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집합은 그 용어를 확실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의 집합이다. 두 번째 집합은 그 용어를 확실하게 적용할 수 없는 것들의 집합이다. 이 두 가지 집합 사이에 그 용어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분명치 않은 것들의 집합이 있다. 이 세 번째 집합은 그 용어를 적용할지 여부가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들의 집합이다. 이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다음의 조건에 따라 그 용어에 대한 정의를 정식화해내는 것이다.

1. 그 용어가 확실하게 적용되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라.
2. 그 용어가 확실하게 적용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제외하라.
3. 이 둘 사이에 가장 확실하게 구분될 수 있는 선을 그어라. 그리고 그 선을 다르게는 그을 수 없고 바로 그렇게 그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

예를 들어 '새'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를 생각해보자. 정확하게 어떤 것들이 새인가? 박쥐를 새라고 말할 수 있나?

첫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정의를 해야 할 대상을 포함하는 보다 일반적인 범주, 즉 유(genus)에서 출발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새에 대해 생각해보자. 새가 속하는 자연의 유는 동물일 것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조건과 세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우리는 새들이 다른 동물들과 어떻게 다른지(이것은 종차(differentia)라고 한다)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물음은 다음과 같이 된다. 정확히 어떤 점이 다른 동물들로부터 새들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새들을, 그리고 오직 새들만을' 구별하게 해주는가?

이 일은 보기보다 까다롭다. 예를 들어 '날 수 있는가'를 구분선으로 잡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타조와 펭귄은 날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날 수 있다'는 정의는 모든 새들을 다 포함하지 못하므로 첫 번째 조건에 위배된다. 그런가 하면 땅벌과 모기는 날기는 하지만 새는 아니다. 이 경우는 새가 아닌 것들도 포함하게 되므로 두 번째 조건에 위배된다.

모든 새들을, 그리고 오직 새들만을 구별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깃털을 갖고 있는가'다. 펭귄과 타조는 날지는 않지만 깃털을 갖고 있다. 따라서 펭귄과 타조는 날지 않더라도 새다. 그러나 곤충은 깃털을 갖고 있지 않으며, 궁금하게 여겼던 박쥐도 깃털을 갖고 있지 않다.

좀더 까다로운 예를 생각해보자. '마약'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다시 한 번 확실한 경우들에서부터 시작해보자. 헤로인, 코카인, 마리화나는 확실히 마약이다. 물, 공기, 대부분의 식품, 샴푸는 확실히 마약이 아니다. 이것들 모두 마약처럼 물질이고, 우리 신체의 일부분에 흡수되거나 바르는 것이지만 마약은 아니다. 담배나 알코올은 불확실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제 물음은 다음과 같다. 확실히 마약인 모든 경우를 포함하고 확실히 마약이 아닌 어떤한 물질도 포함하지 않도록, 두 경우 사이에서 확실한 구분선을 그어주는 일반적인 진술은 무엇인가?

마약은 '마음이나 신체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는 물질'로 정의돼왔다. 심지어 대통령 직속의 마약 관련 위원회의 정의도 그렇다. 그러나 이 정의는 너무 포괄적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공기, 물, 식품 등도 마약에 포함된다. 따라서 이 정의는 두 번째 조건을 위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정신이나 신체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는 불법적인 물질이라고 정의할 수도 없다. 이 정의는 어느 정도는 올바르게 마약에 속하는 물질들의 집합을 표현해줄지는 모르지만 세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 정의는 구분선이 왜 그렇게 되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마약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어떤 물질이 합법적이어야 하고 어떤 물질이 합법적이면 안 되는지를 결정하는 일인가? 마약을 불법적인 물질로 정의해 버리면 이런 결정을 하는 일이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의해보자.

마약은 근본적으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마음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데 주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헤로인, 코카인, 마리화나는 명백히 이 정의에 해당된다. 식품, 공기, 물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설사 이런 물질들은 마음에 영향을 준다 하더라도 그 효과가 특정한 것이 아닌데다 우리가 먹고 숨쉬고 마시는 근본적 이유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불확실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주된 효과가 특정한 것들인가? 그리고 그것이 마음에 일어난 효과인가? 지각왜곡 효과와 기분전환 효과는 마약과 관련해 벌어지는 도덕성 논쟁에서 우리가 염려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따라서 이 정의는 사람들이 원하는 구분을 가능하게 하는 구분선 역할을 해줄 것이 틀림없다.

마약이 중독성이라는 것을 덧붙여야 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어떤 식품들은 중독성이 있지만 마약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부 사람들은 마리화나가 비중독성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처럼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마음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물질이 비중독성인 것으로 판명나면 어떻게 되나? 그렇다고 그것이 마약은 아닌 것인가? 중독성은 아마도 마약의 남용을 정의해주기는 하겠지만 마약 자체를 정의해주지는 않는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유는 최상위의 분류범주다. 말하자면 유를 넘어 자연적인 사물들을 묶어주는 더 상위의 분류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유 안에 사물들이 나름의 종차에 따라 여러 종으로 분류된다고 보았다. 현대 생물학의 분류체계는 이런 문제의식을 계승한 측면이 많으면서도 훨씬 정교한 체계를 지니고 있다.]

[종차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나오는 용어다. 새의 종차는 새들을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하게 해주는, 말하자면 오직 새들에게만 있으면서 모든 새들에세 다 있는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새의 종차를 '날개'라고 주장했다. 또 사람의 종차는 '두 발'로 봤다. 종차라는 개념은 철학적, 존재론적 의미도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낙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다른 방식으로 불확실한 경우는 아스피린, 항생제, 비타민, 항우울제와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이것들은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종류의 물질들이며 조제된 약이라는 뜻에서 '약(drug)'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것들은 '약품(medicine)'이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도덕적인 의미의 '마약(drug)'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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