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이메일의 등장으로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간편하게 글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손으로 글을 써서 한 통의 편지를 완성하기보다 이 메일을 보내기가 훨씬 수월하다. 발송 방식의 차이를 떠나서라도 이메일은 내용 면에서 편지에 비해 훨씬 편리하다. 이메일은 우선 글의 완성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미완성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물어서 지혜를 구하거나 단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일을 결정할 수 있다. 표현에서도 종래에 비해 자유로움이 허용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뭐든지 '제 맘대로' 표현해도 상관없다는 뜻과는 다르다. 긴장감이 풀린 상태에서 쓴 글을 읽는 이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 글이 빈번하게, 그리고 대량으로 오간다는 것은 이메일의 커다란 문제점이다.
이메일 역시 의사소통을 위한 글이다. 상대방이 읽기 쉽고 이해하기 편한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 몇 줄 안 되는 짧은 이메일일든 몇 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의 이메일이든, 그리고 그 이메일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Step1 이메일은 '시소'다
특별히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잘 이해되지 않는 이메일을 받아본 적은 없는가? 그 난해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글쓴이가 '생각하는 작업'을 했는지의 여부가 문장의 이해도를 좌우한다. 이해하기 힘든 이메일을 쓰는 사람은 간단히 쓰는 것과 생각하지 않고 쓰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메일의경우, 이쪽이 생각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으면 상대방이 이해하기 힘든 글이 되고 반대로 이쪽이 생각하는 수고를 들이면 상대방에게 부담도 줄고 이해하기 쉬운 글이 된다. 마치 시소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이메일을 쓰면 그 이메일을 읽는 누군가는 '이 사람은 무엇을 말하려는 거지?' '내게 뭘 하라는 거야?' 하는 고민을 한다. 구체적인 예는 이렇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메일의 예1>
제목: 표지의 처리
A 선배에게
안녕하세요? 출장 간 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전 오늘 의뢰인을 만났어요. 아직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 지금 쓰는 글이 뒤죽박죽일 겁니다.
의뢰인에게 우리 기획안을 보여주었는데 "괜찮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단, 뭔가 확 끌리는 부분은 없는데 그 점만 보완해달래요. 디자인 회사 사람도 만났어요. 그런데 우리 계획대로 추진하려면 지금 책정된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을 거래요. 내일 그쪽에서 우리 프로젝트에 대한 동참 여부를 최종 결정한답니다.
예산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디자인회사도 같은 지적을 했습니다. 이 이상으로 예산을 늘린 순 없겠죠? 디자이너들이 의욕을 잃어 혹시라도 작업질이 떨어질까 걱정이에요.
두서없이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예산에 대한 것은 반드시 검토해야 할 과제입니다.
B가 드림
글쓴이가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읽는 이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는다. 위의 예문이 그 예다.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쓰는 이의 생각을 정리하여 '하고 싶은 말'의 우선순위를 매길 필요가 있다.
Step2 하고 싶은 말의 우선 순위를 정한다
모든 글이 그렇겠지만,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말하고 싶은 내용의 우선순위를 매겨 순서대로 배치하는 것이다. 이메일의 경우는 더 그렇다.
B의 이메일은 여러 가지 내용이 섞여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예산' 문제가 우선순위 1번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예산 문제에 대한 고민을 맨 마지막에 털어놓았다. "예산에 대한 것은 반드시 검토해야 할 과제입니다."
게다가 이 문장은 의견이 아니라 상황 인식에서 그치고 있다. 의사 표현이 더 뚜렷해질 필요가 있다.
1. 예산이 부족하다. 상향 조정해야 한다.
2. 파단이 안 선다. 선배가 결정해주길 바란다.
1의 경우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2의 경우도 의견에 해당한다. 글쓴이의 생각이 더 명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하고 싶은 말의 우선순위를 매기자. 바쁜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지 내 뜻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디자인 비용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Step 3 하고 싶은 말을 뒷받침할 논거를 정한다
의견과 논거의 원칙은 이메일에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의견을 서두에서 분명히 밝히면 나중에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덧붙이면 된다.
논거가 몇 가지 있을 경우에는 우선순위를 정한다. 비즈니스 이메일의 경우에는 바쁜 상대방을 위해 짧게 쓰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논거가 있다면 가능한 한 가지로 모아서 쓰도록 한다.
한 가지 논거만으로 약하다면 가능한 가짓수를 줄여서 우선순위가 높은 것부터 쓰는 것이 좋다. 즉, 신경 써서 읽어주었으면 하는 중요한 내용을 서두에 두는 것이다.
B의 경우, 예로 든 두 가지 의견 중 어느 것으로 할지에 따라 논거도 달라지지만,
- 상대편에서 예산이 적은 것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
- 업계의 동향으로 보아 사내 기준이 낮다는 사실
- 예산이 창작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등의 세 가지를 중심으로 논거를 준비할 수 있다.
의견과 논거를 결정한 단계라면 일단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이메일'이라고 할 수 있다.
UpgradePoint_1: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정한다
팩스용지 중에는 '확인하시는 대로 연락바랍니다' '답신요망' 등의 글이 인쇄된 것이 있다. 이런 표시를 해두면 팩스를 받은 사람이 받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지 알 수 있어서 편리하다.
비즈니스맨이 하루에 주고받는 이메일의 양은 적지 않다. 스팸메일까지 합치면 상당한 양이다. 그래서 전화나 팩스를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상대방이 그 이메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가를 전하는 것고 중요한 매너다.
예문 1의 내용대로라면 선배는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내게 뭘 하라는 거지? 보고로 단지 읽어두기만 하면 되는 건가? 답장을 해야 하나?'
이처럼 상대방이 고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결정해야 한다. 보고인가, 상담인가, 부탁인가. 나아가 이 글을 읽는 대로 상대방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답장은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하면 되는가. 예문1에서는 이렇게 된다.
받는 이가 본 이메일의 의미
- A선배, 오늘 출장에 대한 보고입니다. 읽어주시면 되고 답장은 필요 없습니다.
- 예산에 대해서 의논하고 싶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고 7시에 전화하겠습니다.
- 예산 재조정에 대한 이메일입니다. 오늘 안에 가부를 알려주십시오.
UpgradePoint_2: 의미는 한눈에 전달하라
이메일의 제목을 쓸 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연락' 등으로 해두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받는 이의 수신함에는 수십 통의 이메일이 있고, '연락'이라는 똑같은 제목이 몇 개 있다고 상상해보자. 상대방이 업무를 보는 틈틈이 급한 용건의 이메일만 열어보고자 할 때 이런 제목으로는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어렵다. 결국 이메일을 하나하나 열지 않으면 내용을 알 수 없다.
이메일의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파악하고 급한 정도, 답장 여부 등을 알 수 있다면 받는 이는 물론 쓰는 이도 시간 절약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예문1의 제목 <표지의 처리>는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제목에는 '논점'을 쓴다.
이 경우 논점은 '가을 특집호의 예산을 올려야 하는가'다. 다만 이메일의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하는 부분을 덧붙이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시급! 가을 특집호 예산증약 요청(답장요망)>
<가을 특집호 의뢰보고(장문, 한가할 때)>
이와 같은 제목은 '논점 +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의 내용으로 가능하면 객관적인 표현으로 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이 제목에서 이메일의 내용과 해야 할 일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UpgradePoint_3: 수동태는 피하고 주어는 사람으로 한다
주어는 가능한 사람으로 하고 애매한 수동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계획대로 추진하려면 지금 책정된 예산으로 어림도 없을 거래요.
->
디자이너 C씨가 예산을 보통 그 배가 된다는 지적을 해주었습니다.
주어가 애매하다는 것은 책임소재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책임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의 글을 수동태가 많다.
우리의 예산은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었는데, 예산에 대한 것은 반드시 검토되어야 합니다.
->
당사 기준에 따라서 짠 예산은 업계의 동향으로 보면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따라서 예산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 담당자들의 선에서 반드시 검토해야 합니다.
주어를 사람으로 쓰는 습관을 익히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쓸 수 잇고, 스스로 행동주체로서 책임을 진다는 감각도 키워진다.
이상의 포인트로 예문1을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제목 <시급! 가능 특집호 예산증액 요청(답장요망)?
A선배
가능 특집호의 디자인 예산증액을 부탁합니다.
갑작스럽게 부탁해 죄송하지만,
오후 7시에 전화하겠습니다. 그때 대답해주십시오.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디자인비용을 15만 엔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저희가 짠 예산이 업계 평균에 한참을 못 미칩니다.
업계의 동태를 조사해서 첨부파일로 보내니 확인해주십시오.
계약업체에서 예산에 대한 클레임도 들어왔습니다.
저는 지금 수준의 예산으로는 업체의 의욕은 물론 작업질도 떨어뜨린다고 생각합니다.
예산의 증액분은 통상호의 예산을 줄이는 방향에서 산출해보았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전화로 의논드리겠습니다.
B 드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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